십삼행 유적 발굴 상황–중앙연구원 역사언어연구소 제공 1. 박물관의 시작
제 2급 고적 「십삼행 문화유적지」
1957년 지질학자 린차오치(林朝棨) 답사 후 십삼행 유적지라고 명명하였습니다. 이후에 슬장루(石璋如), 장쩐화(臧振華), 리우이창(劉益昌) 등 고고학자들의 발굴 끝에 대표적 유물들 및 순장품(殉葬品) 유물 등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800년~500년 전에 타이완 철기시대의 대표 문화는 아마도 핑푸족(平埔族) 중의 카이따거란족(凱達格蘭族)과 관계가 있다고 보며 출토된 중요 유물들은 옹기, 철기, 연철로, 순장품(殉葬品) 및 다른 부족들과의 교역품, 마지막으로 대표적 유물인 사람 얼굴 문양 옹기 등이 있습니다.
유적지 시공으로 인해 박물관 건축을 결정하다
1989년~1992년 빠리의 폐수처리장이 유적지에 지어질 예정이라는 소식 때문에 각계 인사들의 관심과 우려를 불러일으켰으며 유적지를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습니다.
1992년 문화건설위원회(현 문화부)는 해당 부지에 3136. 9㎡의 부지를 설정하고 나머지 부지에 폐수처리장으로 만들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1995년 중앙부처와 위원회는 폐수처리장건설예정지에 「십삼행유적지 문화 유물 전시관」를 설립하기로 하였고 예산은 타이페이현(현재 신베이시)에서 부담하기로 하였습니다.
1998년 「십삼행박물관」으로 이름을 변경하고 정식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십삼행박물관 외관 2. 박물관 설립
박물관 주변 환경
본 박물관은 빠리 지역의 강과 바다 교차점에 있으며 한쪽에는 타이완 해협이 있고 단수이강의 하구에는 자연생태 보호구역이 있을 정도로 풍경이 아름답고 친환경적인 곳입니다. 바로 근처에는 아름다운 경치를 가지고 있는 관음산, 국가중요문화자산인 따뻔컹(大坌坑)유적지, 동북쪽의 빠리 폐수처리장, 서남쪽의 타이페이항구가 단수이 빠리의 강을 감상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입니다.
박물관 건축
본 박물관은 총 약 1.2헥타르에 달하는 면적으로 박물관 내의 면적은 약 2000평 규모입니다. 건축 당시 디자인에 대한 아이디어는 고고학 발굴과 관련된 것으로 조상들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대만으로 넘어온다는 내용입니다. 전체 건물이 서로 다른 세가지 형태가 모여 완전한 모습이 된다는 개념입니다. 산과 물, 과거와 현재를 형상화하였고 이런 아이디어를 담을 수 있도록 예를 들어 진흙과 모래, 퇴적암, 산화된 금속판과 같은 재료를 사용했습니다.
햇살광장(Sunshine Plaza)
햇살광장은 약 4헥타르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며 박물관 본관 북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원래 빠리 폐수처리장의 2차 침전지 예정지였지만 본 박물관의 쟁취 끝에 주관부서인 단수이 하수도 시스템 운영 위원회의 동의를 얻어 햇살광장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신베이 시정부 농업국, 신베이 시정부 강변 부지 관리처, 빠리 구청의 큰 도움을 받아 원래 잡초만 무성했던 공간을 사람들이 푸르른 풀과 나무를 보며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야외 광장으로 뒤바꿈 되었습니다. 또한, 주변에 자전거도로, 인도, 남도어족(Austronesian languages)의 긴발 정자(高腳亭), 캠핑장 등 야외시설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관광객들이 여유롭게 쉴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곳곳에 조명등이 설치되어 있어 밤에는 햇살광장이 아닌 별빛광장이 되어 낭만적인 분위기도 느낄 수 있습니다. 햇살광장에서 박물관을 되돌아보면, 원래의 고래언덕이 갑판이 되고 팔각형 탑은 굴뚝이 되어 전체 박물관의 모습이 마치 바다에 떠 있는 큰 배처럼 보여 역사의 파도에 떠내려온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